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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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하루하루가 느리게 흘러갔어요. 초등학생이던 우리 형제는 여름방학이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었죠. 엄마가 돌아가시고 갚아야 할 돈이 많아서 아빠가 몹시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빠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도 하면서 우리 셋을 먹여 살렸어요. 그때 우리는 모두 열 살도 채 안 된 나이였어요.
우리는 바닷가에 가서 파도랑 놀고 싶어서 아빠에게 가고 싶다고 조르고 또 졸랐어요. 그런데 일요일마다 아빠는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러 다녔어요. 어느 날 밤, 제가 뒷마당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셨어요. 아빠의 구부정한 어깨와 피곤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말을 꺼냈어요.
“아빠, 이번 일요일에 바닷가에 가면 안 돼요?”
아빠가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말씀하셨어요.
“그래, 가자.“
뛸 듯이 기쁜 가운데서도 확실한 답을 받고 싶었어요.
“아빠, 약속하는 거죠?“
“그래, 약속해!”
아빠가 지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파도 사이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모습이 머릿속에 펼쳐졌어요. 일요일이 그렇게 느리게 올 수가 없었어요.
드디어 일요일 아침이 왔어요. 저는 곧장 창가로 뛰어갔어요. 그런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하늘 가득 커다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거든요. 그래도 위를 올려다보니 왼쪽에 작은 파란색 하늘 조각이 보였어요. 저는 부엌으로 내달렸어요.
“바닷가에 갈 준비됐어요?”
바쁘게 일하던 아빠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셨어요. 아빠 어깨 너머로 보이는 창밖으로 깜깜한 하늘에 세찬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흩날리는 모습이 보였어요.
“춥고 비도 오고 바람도 불 텐데.”
아빠가 말했어요.
“하지만 아빠, 약속하셨잖아요!”
아빠가 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셨어요.
“그랬지.”
아빠가 제 마음을 이해하시는 듯 대답했어요.
“네가 바닷가에 가고 싶으면 가자. 바닷가로!”
부엌이 점심 준비로 요란해졌어요. 손가락에 얹어 먹을 검은 올리브, 콩 통조림, 달걀 샌드위치, 당근, 셀러리가 모두 준비됐어요. 비가 퍼부어서 파도 속에서 수영하려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했어요. 우리는 재빨리 수영복을 입고 아침으로 오트밀을 먹었어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가끔 빗방울이 앞 유리에 부딪혔어요. 우리는 빠른 속도로 바다로 향했어요. 바닷가까지 112km 거리를 그렇게 빨리 달린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매표소 앞에는 기다리는 차가 한 대도 없었고 오히려 매표소 직원이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우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수건을 들고 바닷가로 향했어요.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생겼어요. 바로 성난 파도와 추운 날씨, 모래바람이었지요. 겨우 발가락이 물에 닿았는데 그걸로 끝이었어요. 부르르! 너무 추웠어요. 우리는 담요 위에 옹기종기 모여 발로 모래를 밀어서 바람막이를 만들었어요. 모래가 묻은 달걀샌드위치를 먹으며 덜덜 떨었어요. 아빠가 따뜻한 옷을 가져오자 우리는 반갑게 받아 들었어요. 우리 얼굴에 실망이 가득 떠올랐죠. 아빠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아셨지만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어요.
“이제 집에 갈래?”
아빠가 물었어요. 아빠의 얼굴에는 우리를 사랑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표정이 가득 퍼졌어요. 이제 집에 갈래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닫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경험과 교훈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요. 성경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을 지키실 거라고 우리는 믿어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하고 너희를 돕겠다.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희를 붙들겠다”(사 41:10, 쉬운).
그날 모래 위에서 떨고 있을 때처럼 살면서 이런 어려움들에 부딪히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믿음을 얻었어요. 그분은 어떤 폭풍이 오더라도 항상 우리와 함께하실 거예요. 언젠가 천국의 바닷가에 앉아 그분께 감사드리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레이 ‘칩’ 브라운 캘리포니아 레드랜즈 중학교의 교사입니다. 특별히 바닷가에서 아내, 자녀, 손주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보배로운 말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하고 너희를 돕겠다.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희를 붙들겠다.”(사 41:10, 쉬운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