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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 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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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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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년에서 젊은 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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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타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대한민국 정상의 첫 카타르 국빈 순방이어서 국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알사니 국왕이 주최한 환영 만찬이 끝나고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현장에 있던 필하모닉 연주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한 단원에게 손을 건네며 인사했다. 이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악장 오주영 씨였다. 이는 한국의 국가 지도자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정상급 아티스트를 만나 격려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인터라켄 음악캠프에서 초·중등부 1위를 차지하며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오주영 씨는 줄리어드 음대 강효 교수의 추천으로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 음악원에 들어갔다.


유학 1년 반 만에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에서 14세의 어린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도로시 딜레이 교수의 천재 군단이라 평가받는 이작펄만, 길샤함, 미도리 그리고 사라 장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주자가 될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꾸준히 국내외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 온 그는 2010년부터 10년 동안 뉴욕 필하모닉 한국인 최초 남자 단원이자 종신 단원으로 활동하다 최근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에 임명됐다. 유럽의 베를린이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오케스트라를 목표로 2007년 창단한 카타르 필하모닉은 첼리스트 겸 지휘자 장한나 씨가 음악감독으로 영입되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수도 도하에서 가족과 생활하고 있는 오주영 씨는 서면으로 진행한 『시조』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문화 차이도 크고, 사람들도 완전히 다른 중동 국가인 만큼 꽤 힘들 것 같았는데 워낙 국제적 도시이다 보니 빠르게 적응했다. 지금도 편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어느덧 ‘천재 소년’에서 이제는 ‘젊은 거장’이라는 칭송을 받는 그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하나님과 부모님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나의 음악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분은 하나님”이라며 “악기를 시작한 것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큰 선물이다. 지금도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임무”라고 말한다. 


부모님의 헌신은 오늘의 그를 만든 밑거름이다. 남다른 재능을 가진 아들을 위해 성업 중이던 사업을 과감히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페셔널 연주자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한 지극정성은 눈물겹다. 사람들은 “모차르트에게 아버지 요한 모차르트가 있다면 오주영에게는 아버지 오종재가 있다.”며 뜨거운 자식 사랑을 기린다. 그 자신 역시 “부모님에 대한 은혜는 내 인생 끝 날까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래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가 글로벌 브랜드 파워가 되고, 젊고 유능한 클래식 스타들이 세계 무대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도 각종 콩쿠르를 통해 ‘음악 영재’로 주목받으며 데뷔하는 어린 ‘신성’들이 그때의 오주영처럼 등장하고 있다. 혹 이들에게 선배이자 비루투오소(매우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대가)로서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지 않을까. 


“요즘은 나이에 비해 뛰어난 연주자가 많은 거 같아요. 그런데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 자신이 좋아서 하는 건지 아니면 주위에서 시켜서 하는 건지 또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건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연주자들이 대부분이에요. 그중 성인이 되어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연주자는 결국 음악이 좋아서 그리고 음악이 자기 인생이 된 연주자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오주영 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밸런스’를 강조했다. 연습 시간, 공부하는 시간, 놀거나 쉬는 시간 등 일과를 현명하게 짜고 잘 지키는 것이 연주자로서의 생명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연습한다 해도 언젠가는 슬럼프나 탈진이 오기 마련인데 소위 ‘영재’라 불리는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오직 연습과 공부에만 치중하다가는 훗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 음악과 멀어지는 순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따라서 연습과 공부 그리고 쉬는 시간을 잘 분배해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훌륭하고 행복한 음악가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을 양육하고 지도하는 부모들의 역할이 크고 중요할 것 같았다. 내친김에 그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이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시는 건 당연하지만 연습이나 공부에 대한 압박은 나중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하루 스케줄 밸런스만 잘 맞춰도 효율적이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꼭 음악가나 연주자를 원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굳이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직언도 빼놓지 않는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면 어차피 자신이 좋아해야 하고, 나중에 어느 때가 되면 선택은 온전히 본인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성’을 꼽는다. 인간적인 면에서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듣는 이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오주영 씨는 “연주자는 음악을 통해 듣고 보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와 감정 또는 신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며 “그런 역할을 잘 소화하려면 음악가이기 전에 인성이 바르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야 한다. 그래야 음악으로도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그와 관련한 기사의 댓글에는 유독 ‘친절하고 인성이 좋다’는 칭찬의 댓글이 많이 보인다.


나아가 자기만족이나 성취만을 위한 음악가는 청중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청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연주하기 때문에 자만심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개인의 목표와 계획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정한 음악가는 결국 청중을 위한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 오주영 씨의 생각이다. 


“듣고 보는 청중 없이는 연주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의미가 없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고 연주해야만 진정성 있는 올바른 음악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자는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혼신을 다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아쉽지만 아직 한국에서의 연주 계획은 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그의 리사이틀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역시 한국 팬들과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음악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해 주는 연주자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벌써 어느 정도 이뤄진 듯하다. 어느 커뮤니티에 남긴 한 팬의 글이 이를 대신 말해 준다.


“유튜브에서 매일 연주를 찾아보며 감동과 힐링을 받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정말 평안하고 따뜻해져요. 감탄을 자아내는 연주자는 많지만 감동을 자아내는 연주자는 흔치 않죠. 아마 음악을 대하는 그의 진정성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인 거 같아요. 오주영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입니다.”



​김범태 본지 객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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