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사채널

본문 바로가기
더보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예언자 엘렌 지 화잇

Ⅵ. 신약성서 이후 예언적 은사 가능성 B. 예언적 은사의 계속성에 관한 이론들

글씨크기

본문

B.  예언적 은사의 계속성에 관한 이론들

그리스도교회 내에 신약정경이 완성된 이후 예언적 은사가 계속되느냐에 관하여 상이한 견해가 대립되어 왔다. 예언적 은사가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끝나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중단론과 신약성경 완성 이후에도 등장할 수 있다는 계속론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고, 1980년대부터는 이 두 이론의 사이에서 차등적 계속론이 발돋움하여 왔다.

1.  중단론
이는 특별계시인 신약 정경 완성과 더불어서 예언적 선물이 중단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예언적 선물은 교회 건립과 형성 초기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서 교회가 세워졌으므로 사도의 역할이 끝난 것처럼 예언자 역할도 A.D. 1세기말에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성경의 권위성과 충분성의 원리를 강조하여 더 이상의 예언적 은사가 필요 없다고 한다. 예언이란 이적성을 띈 선물이고 권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정확한 내용을 지녔으므로 그것이 과오의 개연성을 포함하거나 회중이 그것을 수용 또는 배척할만한 재량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예언은사의 중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당수의 세대주의자들과 개혁신앙과 언약신학 노선에 서 있는 자들이다. 

2.  계속론
이 입장에서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예언 은사들이 사도시대 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졌다고 한 기사가 나오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이 예언적 은사가 계속될 것을 여러 가지로 시사 내지 단언하고 있다고 본다. 예언 은사는 “온전한 것이 올 때까지”(고전 13:10)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지속된다고 본다.  또한 오순절 때 베드로가 요엘 2:28-32를 인용하면서(행 2:16-21) 성령을 부어주심과 예언 은사 약속의 성취로 지적하였다. 요엘의 이 예언은 문맥자체가 오순절 당시와 마지막 때에 성령의 부어주심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종말 시 그 현현을 전망하고 있다. 20세기의 초엽 소위 “첫 번째 물결”인 고전적 오순절주의, 1970년대에 요원의 불길처럼 로마 카톨릭교회를 포함하여 범 교단적으로 번져간 소위 “두 번째 물결인 은사 운동, 및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소위 “세 번째 물결,” 또는 “표적과 이적 운동”으로 불리는 빈야드운동 등이 이 비중단론 내지 계속론의 입장에 서 왔다. 특히 오늘 이 시대에 예언적 은사제도의 당위성을 논증하는 출판물들이 전에 없이 그리스도 교계에 범람하고 있다.

이 예언적 은사의 계속론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구별된다.

a.  동질적 계속론

초기 교회에 필요한 동질적 영적 선물은 오늘의 교회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성령께서 초기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에서도 일하신다고 본다.  복음전도의 대 사명(마 28:18-20) 완수에 무력한 이유는 이 초자연적인 성령의 선물을 등한히 한 탓이다. 성장하는 교회마다 초자연적인 성령의 선물이 역동적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영적 퇴락과 배도의 시대에는 이 은사가 뜸하게 나타날 뿐이다.

b.  차등적 계속론 (은사등급론)

예언은사 차등론 또는 예언은사 등급론은 계속론과 중단론의 사이에서 중도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이중 예언 은사론의 주장자는 사도적 예언은사와 비사도적 예언은사로 나누어 설명을 한다. 사도적 예언은사는 구약성경의 예언적 은사의 계승으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변자격으로 그 예언적 말씀은 무오하여 순종해야 되는 권위를 지녔으며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비사도적 예언이 있다.  요엘 2:28이 오순절 때 성취된(행 2:17) 이후로는 사도 이외에 몸의 여러 지체들이 예언적 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언적 선물은 유오하여 사도적 예언 은사와 동일한 권위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고린도 교회에서 남용되어 문제시 된 은사에는 방언 은사와 함께 이 예언적 은사도 포함되어 있다.Wayne Grudem, The Gift of Prophecy in the New Testament and Today, 15.
물론 이 비사도적 예언의 선물도 같은 진리의 하나님에게서 오지만 그 전달 과정상 원래의 무오한 계시를 보고함에 있어서 과오나 왜곡 현상이 수반된다.Grudem, The Gift of Prophecy in the New Testament and Today, 14

이 비사도적 예언 은사는 사도적 예언 은사만큼 권위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며 때를 따라 예고적(predictive)일수 있지만 그 예고가 안 맞을 수도 있다. 이 예언적 은사는 특정 신자의 사상, 이상이나 꿈을 통하여 또는 천사들의 내방을 통하여 올 수 있다. 이 은사에 관한 대중적 인기가 있는 사례는 은사를 받은 자가 교회 내에는 누군가에 관한 “지식의 말씀”을 받은 경우다. 이 같은 이해는 예언을 권위적, 최종적 예언과 비권위적 예언으로 구분하는데 그 요체가 있다. 이 비권위적 예언의 예로 고린도교회(고전 12-14장), 데살로니가교회(살전 5:19-21), 두로교회(행 21:4), 에베소교회(행19:6) 및 아가보 예언(행 11:28; 21:10-11)을 들고 있다.  그루뎀의 예언 은사 계속론은 다분히 빈야드 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루뎀은 후에 자기의 입장을 중도노선으로 명시하였다.Systematic Theology, 1031-1034, 1039-1043.

파넬은 그루뎀의 입장을 계속론과 중단론의 중도 타협론으로 보았다.F. David Farnell, "The Current Debate about New Testament Prophecy", Bibliotheca Sacra (July-Sep, 1992), 280.

3.  예언은사 등급론의 이론적 근거

a.  성경의 권위성과 충분성: 기존 66권의 성경만이 권위를 지녔고 그 이상 다른 명제적 계시가 필요 없다.

b.  성령의 조명성: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현상을 두고 단지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생각 혹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의식 속에 심어 주신 생각을 예언이라고 보고 있다.Ibid., 1056, 1057.

c.  체험 논증: 예언적 은사를 받은 사람의 직접적 체험한 것으로부터의 논증이다.

d.  주석적 논증

(1)  “사도들과 선지자의 위”(엡 2:20)

이 표현은 “선지자들인 사도들” 또는 “사도-선지자들”로 이해하여 보통 선지자와 구별한다. 

(2)  “선지자"의 개념의 다양성: 신약성경에서 선지자는 단순히 “대변인”이나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말은 신적 권위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Ibid., 1052.

(3) 바울이 선지자의 제언에 불순종한 사건

두로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 여행을 만류한 일이 있었으나 바울이 그 말에 따르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였고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의 말씀 즉 띠 임자가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결박당할 것이니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말을 거스려 굳이 예루살렘 여행을 계속한다 (행 21:4-6, 11-14). 아가보의 예언에서 유대인이 결박한다하였으나 바울은 로마인이 결박할 것으로 알았기에 그 명을 거스리고 여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예언자의 사소한 부정확성을 수반한 하나의 사례가 된다.Ibid.

(4)  먼저 하던 이에게의 침묵 명령(고전 14:30)

이 명령에는 계시-즉 사도 바울의 계시를 고린도교회에 등장한 예언적 은사를 받은 자가 감히 비견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Ibid., 1054, 1055.

(5)  다른 이들의 분변(고전 14:29)

하나님 말씀의 계시는 분변할 대상이 아니나 고린도교회 예언은 분변의 대상이 되어 예언에 등급이 있다. 이러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Ibid.

(6)  비사도적 예언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표현 결여

현대 예언자들의 기별에 “이는 주께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Ibid., 1055, 1056.

(7)  좋은 예언과 좋지 않은 예언

바울이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살전 5:20, 21)고 한 말씀에서 예언의 권위가 성경과 비교하여 열등하다는 것과 좋은 것이 있다면 좋지 않은 것도 있다는 추론을 한다.Ibid., 1054.

(8)  예언의 불완전성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9-10)를 완전한 분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예언적 은사가 존속하나 그것은 불완전할 뿐이다.Ibid., 1055, 1056.

(9)  가르침의 하위에 있는 예언

가르침은 성경에 대한 설명이나 적용 또는 사도들 교훈의 반복 내지 설명이어서 오늘날의 예언은 이 가르침의 하위에 있다.Ibid., 1058.

다음 호에서는 이 차등적 계속론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사이트 정보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운영자: 이상용
  • 운영센터 : 02-3299-5294
Copyrightⓒ adventist.or.kr All right reserved.
Contact webmaster@adventist.or.kr for more information.